제자 삼는 6가지 심플한 방법 – 시저 칼리노브스키 
6 Simple Ways To Make Disciples – Caesar Kalinowski 
(교회의 자매가 번역하고 다듬은 글을 올립니다) 

Caesar Kalinowski shares six simple ways to make disciples without adding anything to your schedule. In the video clip below he says, 
시저 칼리노브스키는 특별한 일정을 만들지 않고도 제자를 삼을 수 있는 6가지 심플한 방법을 가르쳐준다. 아래의 비디오클립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Let me give you six rhythms we’ve been using in community… 

“우리 공동체에서 사용하고 있는 6가지 리듬을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First one is Know the Story. Okay, we all have a story. Is our story a part of God’s story or are we believing a different story that’s been told to us by maybe our parents, our boss, people growing up, the culture? Do we know God’s story as a story? We need to. If we’re going to be living as disciples who make disciples, we need to know God’s story. We need to get to know each other’s story deeply enough to apply the gospel…
첫 번째 리듬은, ‘스토리 알기’ 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스토리 즉, 이야기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의 스토리는 하나님의 스토리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을까요, 아니면 우리는 그것과는 다른 스토리, 그러니까 우리의 부모님, 우리의 상사, 사람들, 문화에 의해서 전해진 스토리를 믿고 있을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스토리를 하나의 스토리로, 이야기로 알고 있을까요? 우리는 그렇게 알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제자를 삼는, 그런 제자로 살아가려면 우리는 하나님의 스토리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을 적용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깊이, 서로의 이야기를 알아가야 합니다. 

That leads us to another rhythm of Listening. We’re always listening to someone, but are we listening to God…We need to listen backwards through the Word of God—Who is God? How has He always been? We need to listen forward through the Holy Spirit. Like my prayer times are mostly filled up with me telling God what to do, then I shoot off into my day. But to cultivate a rhythm of listening to God and in community is how you get to know peoples stories…
첫 리듬은 ‘들어주기/귀 기울이기’라는 다음 리듬으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언제나 어떤 사람의 말을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는지요… 우리는 뒤돌아보듯이 하나님의 말씀(성경)을 통해서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은 항상 어떤 분이셨는가? 우리는 내다보듯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서 들어야 합니다. 저의 기도처럼, 기도 시간 대부분은 하나님께 뭔가를 해달라고 말하는 것으로 채워지고 난 후 급히 바쁜 일정으로 떠나버립니다. 하나님께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귀 기울이기의 리듬을 함양하는 일은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알게 되는 것을 통해서입니다. 

Next rhythm: Celebrate. Life is living in a rhythm of celebration. Think about all the holidays that are just coming around, and birthdays (everybody you know has one), and anniversaries, and graduations, and all. We need to join those celebrations and be the bringers of the better wine…Throw the best parties. 
The church should be the most celebratory people of the planet. We get to live forever! Party!
다음 리듬은 ‘기념하기’ 입니다. 삶은 축하하고 기념하는 리듬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가까이 다가온 모든 공휴일, 생일(당신이 아는 사람들 모두가 가지고 있겠죠), 그리고 결혼 기념일과 졸업식 같은 일들에 대해 생각해보십시오. 우리는 그런 축하와 기념에 참여하고 더 좋은 포도주를 내어 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최고의 축하파티를 여십시오. 
교회는 지구상에서 가장 기념하기를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영원히 살게 될 테니까요! 야호! 파티를 여는 겁니다! 


Rhythm of Eating. Talk about moving from additional to intentional. We’re already eating like 21 times a week…What if I were to have three meals a week with people I’m trying to make disciples of? 
그리고 ‘식사하기’라는 리듬이 있습니다. 식사 모임을 하나 추가하라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인 식사 시간을 가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 보십시오. 우리는 이미 일주일에 약 스물 한 번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만일 일주일에 단 세 번의 식사만이라도 제자 삼으려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Then this rhythm of Bless…Ask the spirit to reveal to you three people that you could bless intentionally each week through either words, action, or gift. Imagine a community of people in a neighborhood, like ten or twelve, all blessing three people a week. You think that neighborhood would notice? It’ll transform a place. 
다음은 ‘축복하기’의 리듬입니다. 성령님께 당신이 일주일 동안 의도적으로, 말이나 행동이나 선물을 통해 축복할 수 있는 세 사람을 보여달라고 구하십시오. 이웃에 열 명, 열두 명 정도로 이루어진 공동체가 일주일에 세 명씩 서로 축복한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이웃들이 공동체를 주목하게 되지 않을까요? 축복하는 공동체는 그 곳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This last rhythm is ReCreate. It’s this idea of rest in Christ’s completed work and then out of that we create beauty and we work and we create value. Resting in what Christ has done for us, not to earn, but then we work. It’s the idea of sabbath."
마지막 리듬은 ‘다시 창조하기’ 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일 안에서 편히 쉬고 그 쉼을 바탕으로 우리는 아름다움을 창조하며, 일하며, 가치를 창조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들 안에서 쉰다는 것(안식)은 돈 버는 것이 아니라 쉬고 나서 우리가 일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안식일의 뜻입니다." 





이재철 목사님의 "목사됨을 지켜주는 묵비"를 통해 나의 '목사됨'에 대한 생각을 걸러 봅니다

목사가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많아도 너무 많습니다. 

나도 그 중에 하나라는 생각은 기분 좋은 느낌을 주지 못합니다. 


나는 '어떤 목사'일까? 
목사가 뭐하는 사람인지, 어떻게 처신 해야 하는지, 교회 사역을 잘 감당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고민이 많습니다. 

그러던 중 이재철 목사님의 '목사됨을 지켜주는 묵비' 서른 셋 항목을 페이스북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읽으면서 

"이런 목사님들이 많으면 참 좋겠다. 교회에 희망이 피어오를 것같다. 명심해야할 주옥같은 말씀이다."

라고 생각하였고 목사들도, 목사가 아닌 분들도, 대체로 감화를 받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공유를 누르고 나누었습니다. 

제 페이스북 주변의 사람들의 반응들이 좋았습니다. 

이런 선명하고 고매한 확고한 신념을 살아내고 있는 분이 드물고 그리워서 그런가 봅니다.

'정말 탁월하신 목사님, 존경하는 목사님, 나는 도저히 따라 갈 수 없는 깨뜻한 분,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는 분'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어울리지 않는 부분, 생각이 다른 부분이 몇 개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처한 환경이 써억 다르기 때문인거 같습니다. 

5살 밖에 안된 교회 

어린이 포함 40명정도의 교회 

아직 교단을 정하지 않은 적어도 장로 교회가 아닌 교회 

비교적 젊은 30-40대가 주축인 교회 

약간 형제교회같은 교회 특성 등 

이런 차이, 다름의 이유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의 '목사됨'에 대한 고민도 풀겸 점검도 할 겸 찬찬히 읽으며 주석 달듯이 생각해보려 합니다 




01. 태초에 하나님은 목사를 만드시지 않고 사람을 만드셨다. 그러므로 목사가 되려하 기 전에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
- 이 항목은 정말로 절대공감하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먼저 되어야 그 사람-인격으로 목사직을 바르게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너무 당연한 지적이지만 너무 빨리 목사가 되거나 사람이 되어가는 세상의 환경과 단절된 채 교회를 중심으로 기독교 주변의 세계에서만 지내다가 목회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사람이 된 사람이 목사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럴려면 목회자가 되는 과정에 적지 않은 손질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 작은 교회가 큰 교회보다 사역이 힘든 이유 중 하나는 신비주의 전략이 오래 못가는 것입니다. 

말하는 것과 사는 것의 차이를 너무나도 쉽게 교인들이 서로서로를 특히 목회자를 알아차리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는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하고 각종 모임 인도하고 이러면 교인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 말의 권위도 선다." 

그러나 작은교회라 할지라도 이런 식으로만 성도들을 만나면 성도들도 서로 종교적으로만 만납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사람으로 만나는 일은 교회 밖에서 이뤄지고 마는 것 같습니다.


- 물론 작은교회도 나름의 힘겨움이 있지만 덜 힘겨웁게 살려고 고민중입니다. 

저는 빈틈이 없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캐릭터도 인물도 못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신비주의를 구사하기 보다는 '주의 은혜로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도중입니다.'라며 실수와 주책 떤 일에 대해 사과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때 성도들의 용서와 용납의 은혜를 누리며, 항상 성도들 앞에 서야 한다는 강박을 벗고, 성도들과 옆에 나란히 서서 걷는 사람-목사이고 싶습니다.

 
- '얻어 먹는 전문 먹사'가 아니라 할 수만 있다면 '사주는 목사'가 되려고 늘 주의하는 편입니다. 

얻어 먹는 것, 신세 지는 것을 당연시하거나 특권처럼 여기면 큰일 납니다. 

나의 대접을 거의 기대하지 않는 부유층 성도의 대접의 경우 "이번에는 제가..."이러면서 감사히 받습니다. 

그러나 열에 하나는 제가 댜접합니다. 

우리는 사람으로 만나기 때문입니다. 

수입이 나보다 적을 것 같은 성도들은 대부분 내가 부드럽게 쏩니다. "다음에 쏘라면서..."
그래서 저는 편안한 옆집 아저씨같은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이재철 목사의 '목사됨을 지켜주는 죽비(竹篦)'

01. 태초에 하나님은 목사를 만드시지 않고 사람을 만드셨다. 그러므로 목사가 되려하 기 전에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

02. 교인들은 목사가 안수 받는 순간부터 목사를 인간 아무개가 아닌 목사로 본다. 그러므로 목사는 죽을 때까지 목사답게 살아야 한다.

03. 목사의 주요 역할은 교인들이 주님의 은혜를 입게끔 은혜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목사 자신이 누구보다도 성결해야 한다.

04. 참된 목사가 되기 원한다면 우리 사회와 교회의 온갖 병리에 물든 눈을 미련 없이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05. 목사는 구도자다. 구도자는 고독해야 한다. 고독은 진리를 위한 자발적인 자기 격리이다. 그래서 고독 속에서만 구도는 깊이를 더해간다.

06. 목사의 승부는 이 세상에서 나지 않는다. 목사의 승부는 코끝에서 호흡이 멎는 순간 하나님 앞에 선다.

07.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당신의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다. 그러나 인간은 죄로 인해 도로 흙이 되었다. 설교는 흙에 하나님 생기를 불어넣어 다시 생령으로 살게 하는 숨길이다.

08. 설교할 때 교인들의 눈높이에 자신을 맞추지 않으면 설교는 단순한 공기의 진동으로 사라져버린다.

09. 설교 원고를 보지 않고 교인들과 눈을 맞추며 설교하는 것은 교인에 대한 설교자의 예의이다.

10. 어떤 상황이나 사물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단어는 하나뿐이다. 설교자는 그 한 단어를 찾기 위해 밤을 지새울 수도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언어와 단어를 만드신 로고스이기 때문이다.

11. 저가 설교에 부족함을 느껴도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말라.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고 단 한 사람에게라도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어주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걸었다면 그런 설교자의 부족함은 성령님께서 온전하게 메워 주신다.

12. 설교의 원천은 성경과 설교자의 삶의 자리이다. 그러므로 삶의 자리가 다른 타인의 설교를 흉내 내려는 것은 금물이다.

13. 교회를 개척하기 원한다면 또 하나의 교회를 개척하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점검해야 한다. 자기 야망이나 뜻을 구현하기 위함이라면 교인이 많을수록 종교 장사꾼이 될 뿐이지만, 소명을 좇아 자신을 던지기 위함이라면 교인이 단 한 병이라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성공한 목회자가 될 것이다.

14. 많은 목사가 그렇게 하듯, 누군가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사람을 버리는 목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목사의 입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15. 목사는 자신이 목회하는 교회 모든 교인의 목사이어야 한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모든 교인에게 똑같은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위한 파벌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16. 교인에 따라서는 정이 더 가고 더 사랑스러운 교인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도 스스로 그들과의 거리를 침범하지 않도록 절제하라.

17. 때로는 거리끼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수 있다. 그 때에도 그 거리보다 멀어져서는 안 된다. 그 교인이 자기 목회지의 교인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믿으시고 그를 맡기셨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18. 언제나 비판의 소리에 열린 귀를 가져야 한다.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될 때에는 지체 없이 사과하라. 목사는 모든 교인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사람을 의미하지 않음을 망각하지 말라.

19. 교구 목사가 자기 교구 교인의 이름을 모두 알지 못한다면 적어도 그 교구 교인 모두의 목사가 될 수는 없다.

20. 목사는 예배를 비롯한 모든 행사를 인도하고 주관하고 책임지는 존재다. 준비할 수 있는 것은 빠짐없이 준비하고 연습해야 할 것은 몇 번이고 연습하라.

21. 교인과 전화할 때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상대를 전화로 연결하지 말라. 목사는 교인을 섬기는 사람이지 기업체 사장이 아니다. 자신보다 연장자가 사무실을 찾아왔다가 돌아갈 때에는 반드시 문밖까지 따라 나가 인사를 드려라.

22. 심방예배를 드릴 때에도 예배당에서 예배드리듯 경건하게 인도하라. 예배는 어디서나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예의임을 교인에게 일깨워주기 위함이다.

23. 자기 목회지에서 받는 봉급을 족하게 여기라. 자신의 요料를 족한 줄로 여기지 않는 목사의 섬김과 봉사는 결국 교인의 주머니를 노리는 미끼에 지나지 않는다.

24. 목사의 재산은 결코 예금통장이 아니다. 목사의 재산은 무엇이든 주님께서 주신 것을 교인과 더불어 나누는 공생심(共生心)이다.

25. 무엇보다도 항상 청결한 몸과 마음가짐으로 교인들을 대하라. 교인들에 대해 그보다 더 바른 예의는 없다.

26. 교역자 자신이 섬기는 교회가 성경적으로 보이지 않을 때, 담임목사나 장로 등이 말씀에서 벗어나 있다고 여겨질 때, 그들을 비판하는 일에 정열을 쏟지 말고 오히려 그들을 반면교사로 삼아 자신에 대해 더욱 엄격하라.

27. 목사가 먼저 하나님을 진실 되게 믿으면 세상은 반드시 달라질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라는 샤를르 푸코의 말은 교인 이전에 먼저 목사가 마음에 새겨야 할 말이다.

28. 성경공부를 인도하고 설교하는 것이 목회의 전부가 아니다. 목회는 주님 안에서 교인들과 더불어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사는 성장 과정의 상처가 주님의 사랑으로 치유 받은 사람이어야 한다. 치유 받지 못한 상처는 더불어 사는 사람에게 무서운 흉기가 되기 때문이다.

29. 현재 자신이 좋은 남편(아내)인지 좋은 아버지(어머니)인지 좋은 자식인지 점검하라. 목사의 가정은 교인들이 들여다보는 진열장이다.

30. 목사가 자신의 외모에 대해 열등감을 지니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자신을 존중하는 사람이 타인도 존중하는 법이다.

31. 목사는 산 속에 유리된 고립인이 아니라 세상에서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속의 구도자이기에 이 세상 누구보다 앞장서서 법을 지켜야 한다.

32. 자신이 꿈꾸던 예배당 건축을 성공적으로 마쳤을 때, 자신의 설교에 은혜 받았다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갈 때, 사람들이 자신을 예수님 대하듯 할 때, 그때 자신이 영적 패륜의 문턱 위에 서 있을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33. 목사도 때가 되면 예외 없이 죽음으로 퇴장한다. 그러나 죽음의 퇴장은 새로운 등장이다. 자신이 살아생전 야망의 노예였는지 아니면 진리의 사람이었는지 죽음의 퇴장과 동시에 밝혀지기 마련이므로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부터 죽음의 퇴장을 준비하라.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