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귐의 교회 여름수련회2016

 소망나누기 시간 교회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때 소개된 강의영상입니다

교회의 역사와 흐름을 잘 이해하셔서 

사귐의 교회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귐의 교회 주일메시지

2016년 2월 28일

    • 제목: [주일 특강]사귐의 교회를 교회답게: 우리교회를 형성하는 몇가지 성경말씀
    • 본문: 요한 일서 1:3
    • 설교: 문춘근 목사







* 사귐의교회: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목회자로서 가장 두려운 질문


0. 이름: 요일 1:3 페리코레시스를 꿈꾸고 반영하는 교회


1. 슬로건: 하나님 나라를 받드는 공동체 (막 1:15)

     - 첫 번째 수건에 수놓은 글귀


2. 목적: 주의 기도로 나아가는 공동체 (마 6:9-13)

1) 사도신경 대신에 주의 기도를 매주 고백하는 예배

- 기도의 대가께서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신 기도문


2) 왜? 우리, 가정, 공동체를 점검하고 형성하는 거울

1 우선순위를 항상 하나님께 두는 공동체! 

2 균형과 조화에 힘쓰는 공동체

3 ‘우리’를 형성하고 더 큰 ‘우리’를 형성해 가는 공동체 


3) 멤버의 최소 마음가짐

1 매일,매주 따로 같이 기도 드리기 

2 매해 <주기도>에 대한 책, 1권 읽기


3. 주인: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되기를 힘쓰는 교회 (마 16:13-20) 

1) 교회의 주인이 누구인가?

제일 큰 반역에서 회개하기

성도로서의 경험과 목회자로서의 경험 사이에서 


2) 기초의 중요성: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개인적 회심의 중요성

2 예수 그리스도를 계속 알아가는 여정의 중요성- 복음서와 구약 


3)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시에 순종하는 교회 공동체

1 교회를 세우시는 분, 누구신가? “나는 이 반석 위에다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

2 우리는 서로 누구인가? 지체의식 membership 


4)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을 실천하려면?

1 매일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인 사귐을 누리며 순종하는 습관

2 중간에 누군가를 끼워 두지 마라, 사이에 끼어들지 말라

3 목회자의 임무: 엡 4:11-12 성도들 구비시켜 하나님 나라 사역을 감당하게 하는 것


5)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의식을 실천하려면?

1 함께 만나서 사귐을 나누며 사랑을 배우고 실천해야: “서로 서로”의 실습 

2 몸인 공동체를 위해 책무를 다 해야: 몸의 사역을 감당하는 헌신


4. 사명: 세상으로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의 교회 (요 20:19-23)

1)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 성 삼위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공동체

가정과 일터와 지역 사회라는 일상을 효과적으로 사는 삶


2) 성령의 지혜와 능력으로 용서와 화해의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 


3)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려면?

1 하나님의 입장에서 성경을 읽되 전체 스토리에 익숙한 사람이 되어야 

2 어떻게: 

a 성경 읽기(통독, E 100 등) 

b 좋은 가이드 도서 읽기

3 우리 시대와 사회의 좌절과 상처를 알고 희망을 주고 보듬는 삶 살아야

   : 하나님 나라의 비전은 그 시대 상황 가운데서 일어난 것이어야


5. 전략: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를 만드는 공동체 (마 28:16-20)

1) 제자 삼는 일에 주력하는 공동체: 

성도가 다 제자삼는 제자인 교회

가서 + 세례/침례 주고 + 가르쳐 지키게 함


2) 상징적인 출발: 제자 훈련으로서의 ‘풍성한 삶의 기초’ 왜?

1 하나님 나라 

2 균형적 기초 강조 

3 성경적 제자도 강조 

4 평생의 헌신 


3) 어떤 제자로 만들 것인가? 마 22:34-40 

    :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6. 우리는 누구인가? (벧전2:9)
1) 허약, 연약함을 인정합니다.


2)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에서 불러내어 다시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우리는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부여하시는 정체성과 부르심의 공동체 






지난 번 글에서 리젠트 칼리지 신학 연수 기간 동안 가졌던 문제의식과 깨달음에 대해 간략히 나누었습니다. 


그 기간의 배움 주제는 두 가지 입니다. 

1. 평신도 신학과 영성(지성근 목사님(함께하는 교회 네트워크)과 일상생활 사역 연구소에서 강조하는 "한 백성 신학"과 맥을 같이 합니다.)

2. 삼위일체 신학과 영성


21세기 사회와 교회가 하나님의 의도대로 갱신되고 회복되는 가장 넓은 틀이자 본질, 그러면서 포용력이 있는 접근방식으로 다가왔습니다. 
당시만해도 목사가 될 생각이 없었고 ivf라는 선교단체에 몸을 담고 있는 중이라 그 안에서 제가 배운 것을 조금씩 실천하려고 했습니다. 


"나 자신의 삶과 사역이 평신도신학의 한 가지 예라도 되면 좋겠다."

"선교단체가 그 삶과 사역의 방식이 보다 인격적인 교제로 새로와졌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두 가지의 당시 몸부림이 기억납니다. 

3년간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선교단체로 돌아왔을 때 영적인 분위기가 상당히 달라 져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통성 기도 일색의 기도 분위기였습니다. 


간사모임에 가도, 수련회에가도 큰 소리로 소리지르며 기도하는 것이 그것도 긴 시간 기도하는 것이 정석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그 열정과 간절함이 좋아보였지만 항상 그런 식으로만 기도하는 모습이 안타까워서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하고 도와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습니다. 

"늘 통성기도하는 것, 박수 치며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제게는 기도하는데 어려움을 줍니다. 

가끔은 조용히 기도하면 안될까요?" 


뜨겁던 분위기가 제 제안때문에 주춤하며 이상한 묘한 분위기로 멈추었습니다. 

처음에 당황했던 동료 간사님 후배 간사님들이 받아 주셔서 통성기도와 묵상 기도의 균형을 조금씩 배려해 주었던 감사한 기억이 납니다. 


저는 당시나 지금이나 우리의 성경적 기도는 인격적인 기도가 주축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먼저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집중하여 듣고 그리고 나서 그 말씀에 비추어 다양한 방식으로 기도하는 훈련이 절실하다고 봅니다. 

기도의 리듬이 인격적으로 되어가기를 바랐더랬습니다.

부산ivf에 복귀해서 새롭게 시작한 프로그램

'짝을 지어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자기의 인생을 말하고 듣고 그 다음에 서로 기도해주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인격적인 나눔에 기초를 둔 앎과 사랑에 기초한 기도를 조금씩 익혀가는데 기여했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지금도 '마음의 대화'가 진행되는지 모르지만 짐 휴스턴 교수님의 friendship practicum을 우리식으로 개정해 본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일대일 관계, 친구관계, 우정이란 단어가 중시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저는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는 교회를 늘 마음에 두고 임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체질 중 하나가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교제하면서 그 분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 교제는 다른 지체들을 대하는 자세와 마음에 영향을 미치기를 원합니다.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끌어들이기는 것이 아니라 좀 천천히 맘과 관계에 여유를 가지고 서로를 기다려 줄줄 압니다. 

그 사람의 삶의 이야기를 들여줄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 이야기를 열어 줄 때 조언하려 들지 않고 대신 잘 들어주려 합니다.
잘 듣고 잘 이해하면 긍휼이 여기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제 드디어 그 분을 위해 사랑하는 맘으로 아는 것을 기초로 성삼위 하나님께 맡겨드리고 기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사귐과 앎과 서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교회를 넘어 이웃에게로 넘어가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섬길 수 있는 처지와 선물이 이미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것을 믿음으로 예수 안에서 더 나아지고 회복될 것을 소망하면서 구체적인 섬김을 통해 사랑을 배워가는 교회.


쉽지는 않지만 인격적인 교제에 기반을 둔 예배와 기도, 섬김의 정신이 사귐의 교회을 둘러싸기를 염원합니다. 

일상의 사귐을 통해 복음을 나눌 때도 인격적으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잘 소개할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전 글에서 이야기한 대로 저는 어쩌다 보니 MH방식으로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일하는 방식은 JG방식입니다. 

주먹구구형입니다. 

이 JG방식때문에 저도 때론 스트레스 받지만 특히 아내가 옆에서 구멍 메꾸느라 고생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부부는 이래맞춰 사는가 봅니다. ㅎㅎ
사전의 치밀한 계획이 없이 물 흐르듯이 함께 이끌어가입시다. 

이게 제 스타일(뚜렷한 ENFP형)입니다. 

이게 문제도 많지만 문제를 만들어내지 않거나 문제를 슥슥 처리해 가는데 쓰일 때도 많답니다. 

뭔 얘긴고 하니 이 시대는 저 같은 유유자적 있는 듯 없는 듯,
밀양(Secret Sunshine)형 사람도 쓰임받는 것이 가능한 시대인 것 같습니다.

어쩌다가 시작하게 되었나?
첫번째 교회 개척에 대한 마음은 교회 생활을 통해 갖게된 문제 의식과 리전트 칼리지에서의 공부와 리플렉션을 통해 잉태된 것 같습니다. 정들었던 첫 번째 교회이지만 신앙생활에 혼란과 절망을 계속 맛보다 성장가도를 걷고 있던 중형교회로 옮기면서 편안하면서도 큰 지원을 받는 특혜를 누렸습니다. 

덕분에 ivf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었구요. 

그러다 1994년 가을 신학 연수로 3년간 밴쿠버 리전트 칼리지 유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졸업 후 몇 달 훈련받고 6년 반 사역을 한 후 일종의 긴 신학적 리플렉션 타임과 안식년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러던 중 여러 가지 문제 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공부 집중과 이를 위한 영어 향상을 위해 한인 커뮤니티에 접촉하지 않고 혼자 있게 되니 

한국 생활과 교회 생활과 ivf 사역, 제 가정, 내 인생 등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중 교회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습니다. 


'진짜 교회를 각 가정을 세워가고 있는가 아니면 각 가정의 희생을 업고 교회만 자라게 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온 백성인 라오스가 어쩌다 오늘날의 평신도인 the Laity가 어쩌다가 (과격한 표현을 용서하십시오.) 

거의 '병신도'같은 위치로 전락하고 말았을까? 목사는 누군가? 어떻게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면서 섬기는 목회를 잘 감당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던 중 마침 리전트 칼리지의 폴 스티븐스 교수에게 수업을 듣고 교제를 하던 중 평신도 사역과 목회에 대한 생각을 조금씩 꿈꾸게 된 것 같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저는 안수 받은 목사가 될 생각은 없었습니다. 

평생 ivf 일만 하다가 죽을 까보다 생각 했습니다. 

제가 목사가 된다? 문춘근 목사. 너무 안 어울리는 어색한 호칭이었지요.

또 하나의 고민은 

"교회 안에서 교회를 통해서 배우고 훈련받은 영성.ivf 안에서 통해서 가르치고 훈련시킨 영성의 피상성, 인격적으로 미흡한 영성. 감정을 다룰줄 모르는 영성, 어색한 관계의 영성."



이런 저런 생각으로 고민 하던 중 유학 2년차에는 영성 신학에 관심이 쏠리면서 제임스 휴스턴 박사(기도: 하나님과의 우정)의 수업을 듣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교회사의 다양하고 풍성한 영성의 흐름에 접하고 되었습니다. 

특히 12세기 시토회의 삼위일체 영성을 접하면서 굉장한 놀람과 도전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일주일에 한번씩 반드시 한국 목사님들과의 멘토링 시간을 가져주셔서 인격적으로 교제한다는 것 이 뭔지 누리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유진 피터슨의 강의를 듣고 공부하면서 삼위일체 신학과 영성에 대한 궁금증과 도전이 커져 갔습니다. 

성경을 읽는 방법에서부터 기도하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인격적인 하나님을 알아가고 전하고 함께 누리는 공동체가 되는 것에 대해 더 큰 문제 의식을 갖고 한국으로 1997년 여름 귀국하게 되면서 배우고 생각한 것을 삶과 사역을 통해 조금이마나 실천해 보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실천했을까요? 

잘 실천했을까요? 

궁금해요? 궁금하면 '오백원!' 

죄송합니다.

생각보다 길어져서 다음 이야기에 정리해 보려합니다. 

무더운 여름, 홀로 침묵 가운데 틈내 쉬시는 복 누리시기를 빕니다.

솔직히 말해 우리 교회는 주님이 은밀히 함께 하시는 가운데 "어쩌다가" 시작되었습니다. 

능력있고 진취적인 목사님들은 개척 비전을 잘 준비하고 개척 시나리오, 실제적인 준비를 통해 시작하십니다. 

왜 교회를 시작하는지 당위성을 정해놓고 시작하시는 것이죠. 

저도 결국 왜라는 질문으로부터 도망갈 수 없었지만 투철한 목적의식으로 선명한 비전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목회자로서도 부족함이 철철 넘치는 사람입니다. 

멀리서 보면 꽤 좋아보이는 면도 있지만 한 번 지내보신 분들은 알 겁니다. 

그 타고난 엉성함을! 저에게는 왜 교회를 새로이 시작하게 되었는지 말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진짜 왜 사귐의 교회를 시작하게 하셨는지 아직도 제 편에서 잘 모르는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였을까요? 

5년전에 정말 순수하게 자연스럽게 MH방식으로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MH 방식이란 맨 땅에 헤딩하는 방식으로 겁없이 멋도 모르고 순진하게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머리에 혹이 자주 나너가 터지는 일을 겪기 마련인 교회 시작 방식을 말합니다. 

앞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중에 머리 터진 얘기, 혹 난 얘기 나눌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가족 포함 세 가정이 함께 하여 소그룹 형식의 모임을 하면서 시작했습니다. 

기억력이 기억상실증 수준이라 가물가물 하지만 한 가지 늘 강조했던 원리는 있었습니다

"부산에 살고 있는 기독교인의 수가 6명이 있는데 그들이 우리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교회를 이루어갈지 천천히 생각하면서 나아가도록 합시다."

 

이 원리가 제 머리에서 나왔다는게 놀랄습니다. 

무조건 '모방하는' 교회 개척이 안 될 수 있도록 지켜주었습니다. 

조금 다르게 생각하고 창의적으로 시도하는 등 아주 긴요한 가이드가 된 것 같습니다. 
열심이 있고 헌신적인 멤버들조차도, 아이디어와 생각, 태도 등에서 나름대로 '새롭거나' '개혁적인' 교회를 개척해 보려했던 지체들조차도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신 것 같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이전 교회에서의 문화와 패턴을 여전히 맴돌면서 그저 급한 마음에 답습하려는 유혹이 떠나지 않는구나 자주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자, 어떻게 이 원리를 풀어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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