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글에서 리젠트 칼리지 신학 연수 기간 동안 가졌던 문제의식과 깨달음에 대해 간략히 나누었습니다.
그 기간의 배움 주제는 두 가지 입니다.
1. 평신도 신학과 영성(지성근 목사님(함께하는 교회 네트워크)과 일상생활 사역 연구소에서 강조하는 "한 백성 신학"과 맥을 같이 합니다.)
2. 삼위일체 신학과 영성
21세기 사회와 교회가 하나님의 의도대로 갱신되고 회복되는 가장 넓은 틀이자 본질, 그러면서 포용력이 있는 접근방식으로 다가왔습니다.
당시만해도 목사가 될 생각이 없었고 ivf라는 선교단체에 몸을 담고 있는 중이라 그 안에서 제가 배운 것을 조금씩 실천하려고 했습니다.
"나 자신의 삶과 사역이 평신도신학의 한 가지 예라도 되면 좋겠다."
"선교단체가 그 삶과 사역의 방식이 보다 인격적인 교제로 새로와졌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두 가지의 당시 몸부림이 기억납니다.
3년간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선교단체로 돌아왔을 때 영적인 분위기가 상당히 달라 져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통성 기도 일색의 기도 분위기였습니다.
간사모임에 가도, 수련회에가도 큰 소리로 소리지르며 기도하는 것이 그것도 긴 시간 기도하는 것이 정석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그 열정과 간절함이 좋아보였지만 항상 그런 식으로만 기도하는 모습이 안타까워서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하고 도와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습니다.
"늘 통성기도하는 것, 박수 치며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제게는 기도하는데 어려움을 줍니다.
가끔은 조용히 기도하면 안될까요?"
뜨겁던 분위기가 제 제안때문에 주춤하며 이상한 묘한 분위기로 멈추었습니다.
처음에 당황했던 동료 간사님 후배 간사님들이 받아 주셔서 통성기도와 묵상 기도의 균형을 조금씩 배려해 주었던 감사한 기억이 납니다.
저는 당시나 지금이나 우리의 성경적 기도는 인격적인 기도가 주축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먼저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집중하여 듣고 그리고 나서 그 말씀에 비추어 다양한 방식으로 기도하는 훈련이 절실하다고 봅니다.
기도의 리듬이 인격적으로 되어가기를 바랐더랬습니다.
부산ivf에 복귀해서 새롭게 시작한 프로그램
'짝을 지어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자기의 인생을 말하고 듣고 그 다음에 서로 기도해주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인격적인 나눔에 기초를 둔 앎과 사랑에 기초한 기도를 조금씩 익혀가는데 기여했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지금도 '마음의 대화'가 진행되는지 모르지만 짐 휴스턴 교수님의 friendship practicum을 우리식으로 개정해 본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일대일 관계, 친구관계, 우정이란 단어가 중시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저는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는 교회를 늘 마음에 두고 임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체질 중 하나가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교제하면서 그 분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 교제는 다른 지체들을 대하는 자세와 마음에 영향을 미치기를 원합니다.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끌어들이기는 것이 아니라 좀 천천히 맘과 관계에 여유를 가지고 서로를 기다려 줄줄 압니다.
그 사람의 삶의 이야기를 들여줄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 이야기를 열어 줄 때 조언하려 들지 않고 대신 잘 들어주려 합니다.
잘 듣고 잘 이해하면 긍휼이 여기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제 드디어 그 분을 위해 사랑하는 맘으로 아는 것을 기초로 성삼위 하나님께 맡겨드리고 기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사귐과 앎과 서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교회를 넘어 이웃에게로 넘어가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섬길 수 있는 처지와 선물이 이미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것을 믿음으로 예수 안에서 더 나아지고 회복될 것을 소망하면서 구체적인 섬김을 통해 사랑을 배워가는 교회.
쉽지는 않지만 인격적인 교제에 기반을 둔 예배와 기도, 섬김의 정신이 사귐의 교회을 둘러싸기를 염원합니다.
일상의 사귐을 통해 복음을 나눌 때도 인격적으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잘 소개할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